[체인소 맨] 덴지가 맛본 달콤한 순간, 그 뒤에 남겨진 지독한 허무함에 대하여
- 16시간 전
- 2분 분량
안녕하세요, 렌입니다.
다 읽고 나면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허무함이 있다. 이야기가 막을 내린 순간, 가슴 속에 뻥 뚫린 '구멍' 사이로 찬 바람이 몰아치는 듯한 감각. 왜 우리는 이토록 공허해지는 것일까. 그 정체를 조금이나마 깊게 들여다보고 싶다.
덴지가 맛본 상실의 질
이야기 중반, 덴지와 레제가 보낸 시간은 너무나도 싱그럽고 달콤했다. 빗속의 교실, 밤거리를 거닐며 나누었던 소소한 대화들. 그곳에는 그가 지금까지 갈구해 온 '잼을 발라 먹는 빵'처럼 아주 원초적이고 절박한 생존 본능과는 또 다른, 차원이 다른 '충만함'이 있었다.
덴지는 그저 평범한 삶을 바랐다. 누군가와 교감하고, 의미 없는 대화를 즐기는 것. 그 소박한 소망이 레제라는 존재를 통해 아주 잠시나마 '현실'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하지만 그 달콤한 시간은 폭발적인 폭력에 의해 무참히 찢겨 나갔다.
이 상실감이 이토록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손에 넣으려 했던, 즉 '나와는 다른 타인과 연결될 수도 있다'는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이 눈앞에서 영지적으로 닫혀버렸기 때문이다. 빼앗긴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변화할 가능성' 그 자체였다.
덴지에게 있어 상실은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정신적인 공동(空洞)을 넓혀 놓는다. 손에 넣으려던 순간, 그조차도 '가짜'였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그의 내면에 깊게 각인된다.
운명의 잔혹한 엇갈림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이끌렸던 그 순간, 거기에는 너무나도 잔혹한 필연이 있었다. 레제는 덴지를 죽이기 위해 보내진 자객이었고, 덴지는 바로 그 표적이었다. 두 사람 사이를 흐르는 것은 사랑이 아닌, 주어진 역할에 따른 대립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각자의 '역할(가면)'을 연기하고 있었다. 레제는 임무를 위해, 덴지는 살아남기 위해. 하지만 가면 뒤편에는 공통된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숨겨져 있었다. 날 것 그대로의 진심이 드러났을 때 두 사람은 공명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공명이 피할 수 없는 비극을 앞당기는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만약 두 사람이 평범한 인간으로 만났다면 이런 결말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폭탄'과 '전기톱'이라는 파괴의 상징으로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운명은 그들이 마음을 나누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채,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도록 몰아넣는다.
두 캐릭터가 품고 있는 상처가 맞물리는 순간, 비극은 결정된다. 이토록 효율적인 절망의 연출은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야기 속 '연결'의 결핍
이야기 종반, 모든 것이 끝난 뒤에 남은 것은 압도적인 정적뿐이었다. 격전이 지나간 후 덴지가 향한 곳, 혹은 누군가를 기다렸을 그 장소. 마땅히 있어야 했을 누군가의 부재가 화면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많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동료나 이해자와의 '연결'을 통해 강해진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가 그려낸 것은, 손을 뻗으려던 찰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 손이 미끄러져 빠져나가는 과정이다. '그날, 만약 그곳에 갈 수 있었다면'이라는 가정은 독자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긴다.
연결은 성립될 뻔했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할 '일상'이라는 토대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야기의 절정에서 그려진 것은 유대의 형성이 아니라, 유대의 '불완전한 성립과 붕괴'다. 이 결핍이 있기에 독자들은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그 공백 속에 계속해서 갇혀 있게 된다.
결말에 남겨진 것은 채워질 수 없는 허기다. 그것은 덴지가 느끼는 식욕과는 결이 다른, 영혼의 허기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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